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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이슬람혁명과 서방의 공세

구정은의 이란역사(5) – 호메이니와 이란이라크전쟁   아들 파흘라비(보통 ‘팔레비 국왕’으로 불리는) 즉위 뒤인 1941년 소련과 영국은 이란을 침공한다. 이란은 연합국의 병참기지가 되었고, 영국과 소련의 경제적 침탈도 심해졌다. 소련군은 2차대전 종전 후에도 가장 늦게까지 이란에 주둔했으며 이를 배경으로 이란 공산당인 투데당 Tudeh party이 세력을 불렸다. 반외세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하마드 모사데그 Mohammad Mossadegh (위 그림)가 이끄는 국민전선이 약진을 보이자 1951년 국왕은 등 떼밀려 그를 총리에 임명한다. 모사데그 총리는 취임과 동시에 유전 국유화를 단행했다. 이란 유전을 꿰차고 있던 영국은 이란의 돈줄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모사데그가 투데당과 협력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까지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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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란의 서구화 정책

구정은의 이란역사(4) – 파흘라비(팔레비) 왕조의 개혁   근대 이란은 카자르 Qajars 왕조 (1795-1925) 시기부터라고 볼 수 있다. 아그하 모하마드 칸 Agha Mohammad Khan은 케르만 지방에서 잔드 Zand 왕조를 끝내고 카자르 왕조를 연 뒤 테헤란으로 천도했다. 하지만 성격이 극악무도해서 시종에게 살해되고 말았다고. 아들도 애비 못지 않았는지, 사치에 탐닉해 국고를 탕진하고 아제르바이잔을 러시아에게 빼앗기는 바보짓을 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란 문화권인데 옛 소련 시절을 거치면서 나라가 완전히 비틀어졌고, 독립한 뒤에는 아수라장 꼴이 났다. 19세기 중엽부터 러시아와 영국이 이란을 침략하기 시작. 문제의 저 아들내미는 러시아와 두 번 싸워서 지고 끝내 코카서스를 빼앗겼고, 또 그 아들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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