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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이슬람과 서구의 응어리는 어디서 왔나?

무슬림이 바라본 이슬람 분쟁(1)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무슬림들의 심정은 매우 착잡했다. 미국시민들을 겨냥한 반인류적 테러행위에 한 목소리로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서구의 ‘이슬람 악마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묵시론적 분위기도 팽배했다. 보복에 나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심지어 9.11 테러와 아무 상관없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를 침공해 무고한 이슬람 국가 시민들이 죽어나가자 무슬림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다. 탈레반이나 사담 후세인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서구의 철저한 이중잣대 때문이었다. 이웃 팔레스타인에서 가난한 생명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해 일상처럼 죽어나가고, 수십만명의 무슬림들이 서구의 침공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3,000여명의 9.11 테러 희생자만 기억하고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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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두바이에 두 번째 가톨릭 성당 문 열다

이슬람 나라에서 타 종교를 선교하는 것(특히 개신교)은 ‘실정법’을 위반한 것으로 중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믿는 종교는 이슬람 초창기 시대부터 보호 받았습니다. ‘딤미’와 ‘밀레트’라는 제도를 통해 약간의 인두세만 내면 자기네 종교와 민족적 전통을 인정해줬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랍 지역 전역에 유대인 공동체는 물론이고 초창기 기독교 공동체들이 1500년 가까이 아랍 민족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다만 금지된 것은 자기 종교를 무슬림들에게 전파하는 활동입니다. 이는 꾸란이나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아니라 이슬람 국가들의 현행 법률에 따라 금지시킨 겁니다. 지난 12일 아랍에미레이트(UAE)의 두바이에선 두 번째 가톨릭 성당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름은 ‘성바오로 성당’이네요.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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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Videos 

이슬람은 평화와 평등의 종교

기독교가 사랑, 불교가 자비, 유교가 인이라고 한다면, 이슬람은 한 마디로 평화와 평등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610년 아라비아에서 무함마드라는 한 인간에 의해 탄생된 종교가 1400년이 지난 지금 세계에서 15억이란 가장 많은 인구가 받아들이고, 현재도 역동적으로 성장해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부족한 편이죠. 이슬람은 평화와 평등의 종교 같은 일신교 종교로서 유대교, 기독교와 이슬람이 한 뿌리에서 출발합니다. 창세기에서부터 구약까지는 종교적 믿음을 같이 하고 있고요,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적 지위 문제에서 세 종교가 나뉘게 됩니다. 잘 알다시피 유대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선자로 버렸고, 기독교에서는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경지와 동일시한 반면에 이슬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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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Videos 

이슬람과 서구는 왜 갈등하는가?

이슬람의 테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와 이슬람간의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서구와 이슬람은 1차 2차 세계대전까지 적어도 1200여년 간 지배 피지배의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711년 아랍군대가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732년에는 프랑스 파리 교외 푸아티에까지 진출합니다. 그때부터 800년간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의 땅이었고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남부도 200년 이상 아랍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지배 피지배의 기억을 가진 서구와 이슬람 동부전선에서는 1453년 오스만터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발칸 반도가 이슬람화되죠. 1683년에는 유럽 최강국이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비엔나가 세 차례 공격을 당합니다. 711년 지블롤터 해협을 공격한 데서부터 1683년 비엔나가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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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Culture 

중동 여심 뒤흔든 터키 드라마 열풍

3월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은 중동지역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여성의 사회참여와 인권이 유달리 제한되는 현실에서 중동 여성들의 좌절과 절규는 최근 터키의 한 멜로드라마에서 극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두 연인의 깊은 사랑과 상처의 치유를 다룬 ‘누르’, 성폭력으로 버림받은 한 터키 여성의 좌절과 사회정의를 위해 온몸을 던져 투쟁하는 과정을 그린 ‘파티마 귤’이 중동 전역을 폭풍처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 1억명의 시청자를 확보하며 중동을 넘어 북아프리카와 발칸반도까지 무서운 속도로 안방문화를 바꿔놓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누르’의 여주인공인 누르는 가난하지만 당당하고 도덕적 품격까지 갖춘 아름다운 커리어우먼이다. 남편 모한나드는 이런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아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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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은 완전 허구

공존과 상생의 종교 이슬람(5) – 이슬람은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됐나   이슬람 사람들은 순박하다. 그럭저럭 30년 이상 이슬람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녀보았지만 ‘저 사람 혹시 테러리스트가 아닐까?’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순수하고 의리를 존중하는 그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빵과 잠자리를 마련해준다.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업어도 오늘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공동체에 한 톨의 양식이라도 남아 있는 한 굶주리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삶의 철학이고 공동체의 정신이다. 이처럼 척박한 사막에 물과 나눔이 넘친다. 이슬람과 아랍인이 호전적이고 약육강식의 법칙밖에 모른다는 서구 중심의 묘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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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슬람 단식의 아름다운 정신

공존과 상생의 종교 이슬람(4) – 단식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지혜   이스탄불의 토프카프 박물관의 고문서국과 오스만 공문서 자료실은 내 삶의 공간이고 학문의 산실이었다. 이곳에서는 백만권이 넘는 필사본이 수백 년 동안이나 묵묵히 연구자를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소장학자들이 경쟁하듯이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중세 오스만어로 된 고문서를 뒤져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지루한 작업을 계속한다. 6년간이나 이 어두컴컴한 자료실을 뒤지고 자료를 읽었다. 이에 근시인 나의 시력은 안경으로 교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었다. 여기서 나는 신라와 고려에 관련된 아럽어 자료 20여 권을 읽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술탄의 밀사로 조선에 파견되었던 압둘 라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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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rica 

아랍세계의 변화는 카이로에서

이슬람 문명과 도시(2) – 아랍세계 변화의 현장 카이로 나는 현지조사를 위해 중동에 가는 길에는 거의 반드시 이집트의 카이로에 들른다. 아랍 세계의 생생한 변화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집트인이 이룩한 건축예술의 위대성과 지칠 줄 모르는 창조정신에 인류는 고개를 숙이고 숙연한 존경을 표하지만, 오늘날 이집트의 모습에는 애써 얼굴을 돌린다. 그들이 이교도인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은 형편없이 못사는 경제적 낙후성 때문에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집트의 과거보다는 오늘의 정겨운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겨울에도 나는 박제된 과거가 아닌 그들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이집트로 달려갔다.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 10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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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eos 

시장으로서 중동과 문화로서 이슬람_이희수

이 강연은 2014년 6월에 있었던 여의도 메타포럼 CEO 아카데미 강연을 녹화 편집한 내용입니다. 이희수 교수는 이 자리에서 시장으로서 중동이 얼마나 매력적인 곳인지, 그리고 문화로서 이슬람이 얼마나 평화지향적인지를 강조합니다. 특히 이슬람권은 UN 통계로 현재 57개국 15억명에 달하는 지구상에서 최대 규모의 단일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자원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아니 무시해서는 안 될 파트너인 것이죠. 16분 정도로 짧게 편집한 내용이니 시간 내서 시청해보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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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하 교수의 ‘이슬람 문화 이해’

조선대학교 아랍어학과 황병하 교수의 ‘이슬람문화 이해’ 강의입니다. 이 강의는 2011년 11월경 광주광역시 광주국제교류센터에서 개최된 ‘국제이해강좌’의 한 꼭지로 진행된 것입니다. 강의 당시는 자스민 혁명에서부터 이집트 혁명 등 이른바 아랍의 봄이 한창 꽃피던 시기였습니다. 황병하 교수께서 그 당시 이야기도 곁들여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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