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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은 완전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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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과 상생의 종교 이슬람(5) – 이슬람은 어떻게 세계 종교가 됐나

 

이슬람 사람들은 순박하다. 그럭저럭 30년 이상 이슬람 세계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녀보았지만 ‘저 사람 혹시 테러리스트가 아닐까?’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순수하고 의리를 존중하는 그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빵과 잠자리를 마련해준다. 내일 당장 먹을 것이 업어도 오늘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공동체에 한 톨의 양식이라도 남아 있는 한 굶주리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삶의 철학이고 공동체의 정신이다. 이처럼 척박한 사막에 물과 나눔이 넘친다. 이슬람과 아랍인이 호전적이고 약육강식의 법칙밖에 모른다는 서구 중심의 묘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이슬람 세계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전혀 근거도 없는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란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인류가 이슬람을 오해했을까라고 생각하곤 했다. 이슬람이야말로 공존과 상생이라는 두 뿌리를 딛고 자란 종교다. 아라비아라는 척박한 생태 조건에서 두터운 문화적 하부 구조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발아한 이슬람은 용광로를 활짝 열어놓고 주변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것을 자기화 함으로써 급속한 발전을 거듭했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융화력이야말로 이슬람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Bedouin in Aviators

다른 일신교의 역사와 비교해볼 때, 이슬람 제국의 기본정책은 칼보다는 공납이었으며 이슬람 세력의 권위와 기득권을 받아들이는 전제에서 소수민족들의 종교와 피지배 민족들의 문화가 향유되었다. 소수 정예의 교역, 유목, 전사 집단이 주축이 된 이슬람 세력은 우선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였기 때문에 애초에 과거 비잔틴과 페르시아 치하에 있던 농경 정주사회를 직접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피정복지의 토착세력과 결탁하여 세금을 걷는 조건으로 자유로운 삶을 보장해주었다. 해당 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기존 문화와의 공존을 최우선으로 했다. 일방적으로 이슬람을 강요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4세기부터 7세기까지 300년 이상 지속된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기나긴 소모전은 양 제국 치하 주민들의 삶을 유린했으며, 이로 인한 수탈경제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사회 환경에서 일정한 세금을 내면 재산은 물론 고유한 관습과 종교까지도 보장해주는 새 정권의 질서유지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강자의 편에 붙겠다는 생존전략과 세금감면이라는 현실적 동기부여가 이때 피정복민의 대량 개종을 가능케 한 요인으로 보인다. 이슬람 정부가 피정복민의 개종을 강제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피정복민의 지나친 개종은 국가 조세수입을 감소시키고, 상층 권력구조의 불균형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계했다고 본다.

이런 면에서 이슬람의 정복 고정이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말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거의 완전한 허구이면서 망령이다. 이슬람의 급속한 전파는 토착문화와의 자연스런 만남과 공존의 결과였다. 이슬람 세계는 16세기 이후 수백 년 동안 서구 기독교나 다른 정치세력의 지배를 받았으면서도 단 한 곳도 이슬람교를 버리고 원래의 토착종교로 돌아가거나 혹은 다른 정치집단의 이데올로기로 개종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이 이슬람의 무력전파를 반박하고 종교의 공존과 문화의 상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역사적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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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왜 우리는 이슬람과 아랍에 대해서 부정적일까? 한국 사회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조차도 “아랍=이슬람” 등식 속에서 무엇이 아랍의 전통이고 악습인지, 무엇이 이슬람의 진정한 가르침인지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일부다처, 근친결혼, 여권탄압, 침략과 호전성 같은 것은 이슬람과 거리가 먼 유목사회의 관습임에도 이 모두를 이슬람과 관련지어 생각한다.

이것은 먼저 우리의 시각으로 중동지역과 이슬람 문화를 들여다볼 기회와 채널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 외신란에 실리는 자살 폭탄 테러, 전쟁, 갈등, 분쟁이란 단어로 그들을 보았을 뿐, 그들의 진정한 삶의 모습과 고민의 언저리들을 달여다볼 창이 없었다. 게다가 중동과 이슬람의 문제를 온통 적대적 이해당사자인 미국과 유대 중심의 언론과 관점으로 보아왔다는 점이 이런 왜곡을 더욱 심화시켰다.

지난 50년간 객관과 공정 보도라는 허울에 빠져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양산된 지적 편중이 우리를 인식의 식민 상태에 놓이게 한 것이다. 이런 왜곡 현상은 현재 너무나 팽배해서 적어도 균형감각을 갖추는 데만 한 세대는 더 걸릴지도 모른다.

이슬람을 공부하면서 내 삶도 덩달아 많이 달라졌다. 평생 주변부 학문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소외받은 문화와 계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다행히 내가 몸담고 있는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 옆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다문화 공동체인 ‘국경없는 마을’이 있다. 틈만 나면 거기서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의 애환과 어려움을 들어주고 고통을 나누려 노력했다.

Nap

자연스레 지금은 그곳이 학교 수업의 현장이 되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와 현장공부를 제자들과 공유하며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사는 법을 같이 배우고 있다. 또 내 삶의 템포도 느려졌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라는 조급증 철학에서 벗어나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철저히 내일로 미루자”는 느림의 가르침을 익히고 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은데, 이슬람과 그 문화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폭발하면서 여거저기 쉴 새 없이 불려다닐 때마다 대학 1학년 때의 삐딱한 결심에 항상 감사하게 된다. 지금도 진로를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고정관념과 유행, 빈틈 없이 꽉짜인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황무지 상태의 지구촌 반대 방향에 눈길을 돌려서 할 일을 찾으라고 강한 어조로 주문한다. 내가 이슬람을 만나 사랑에 빠졌던 것처럼.

논문 지도교수였던 이스탄불 대학교의 메흐메트 사라이 박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불러 앉혀놓고 “교수는 항상 레몬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레몬의 존재 가치는 맛이나 빛깔, 향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품고 있는 액즙에 있으며, 그 액즙은 스스로 짤 수 없고 남들에게 얼마나 철저히 짜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래서 강의 첫 시간이면 나는 학생들에게 질문과 토론을 통해 내가 가진 한 방울의 지식까지 모두 내놓을 수 있는 레몬교수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나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작년 한 해에도 학교 바깥에서 백 회 이상의 이슬람 관련 강연을 했다. 사회적 요청이 있고 시간과 여력이 있는 한, 지식의 한 방울이라도 사회에 되돌리려는 레몬 교수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앞으로도 나는 우리 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증인 이슬람 포비아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와 다른 가치,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존엄성과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문화적 전통이 있고, 이를 존중하는 것이 인간세상의 가장 기초적인 덕목이라는 사실을 깨우치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더불어 “이제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 내가 인식의 주체가 되어 냉철한 실체적 현실에 근거해서 우리 국익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라는 학생들을 향한 나의 외침을 계속할 참이다(끝).


이 글은 이희수 교수가 이슬람 문화 공부를 하게 된 과정을 담은 것으로 2009년 인물과사상사가 펴낸 ‘그 삶이 내게 왔다 : 나만의 길을 찾은 17인의 청춘 에세이’의 열 두 번째 장 ‘공존과 상생의 종교 이슬람과 함께’에 실린 내용입니다.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여기에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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