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here
People 

이슬람 단식의 아름다운 정신

Share on FacebookTweet about this on TwitterShare on Google+Share on LinkedIn

공존과 상생의 종교 이슬람(4) – 단식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지혜

 

이스탄불의 토프카프 박물관의 고문서국과 오스만 공문서 자료실은 내 삶의 공간이고 학문의 산실이었다. 이곳에서는 백만권이 넘는 필사본이 수백 년 동안이나 묵묵히 연구자를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소장학자들이 경쟁하듯이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중세 오스만어로 된 고문서를 뒤져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지루한 작업을 계속한다.

6년간이나 이 어두컴컴한 자료실을 뒤지고 자료를 읽었다. 이에 근시인 나의 시력은 안경으로 교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었다. 여기서 나는 신라와 고려에 관련된 아럽어 자료 20여 권을 읽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술탄의 밀사로 조선에 파견되었던 압둘 라시드 이브라힘의 조선 보고서도 찾았다. 러일전쟁과 한일합방 당시의 이슬람 세계의 반응을 기록한 자료들도 접할 수 있었다.

박사학위 논문은 9~16세기 사이에 이슬람과 투르크 문화가 실크로드를 통해 어떻게 동아시아로 전파되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화적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역사적 연구였다. 문화교류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두 문화 모두에 대한 기초적인 공부, 나아가 문화 전파 루트에 대한 조사가 병행되어야 한다. 또 보다 넓은 안목과 다양한 자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행히 중세 동서문화 전파 루트가 거의 대부분 이슬람권이고 역사적으로 투르크 문화의 깊은 영향을 받은 지역이라서 이슬람과 투르크 문화를 익힌 나는 어려운 고비를 비교적 잘 넘길 수 있었다.

{  اقرأ باسم ربك الذي خلق  ,,

나는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현장 연구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온몸으로 이슬람을 호흡하면서 그들의 외적 태도는 물론 영혼까지 읽으려 했다. 종교의례에 참여하는 건 기본이었고 터키와 콸라룸푸르, 제다 등지에서 여러 차례 한 달간 단식을 경험했다.

이슬람 사람들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는 고통을 스스로 감내한다. 그것도 하루이틀도 아니고 한 달씩이나. 더운 날씨에 목이 타들어가도 침조차 삼키지 않는 모습이 집단 광기처럼 보여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몇 해가 지나자 단식이 정화와 나눔의 의식임을 터득하게 되었다. 가진 자와 가난한 자, 강자와 약자가 모두 공동체의 울타리에서 하나로 귀결되는 성스런 과정이었다. 형이상학적인 관념이나 말과 구호가 아닌 스스로 굶어 고통을 체득함으로써 배고픈 사람들의 ‘먹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절절한 소망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는 나눈다. 단식을 마친 사람들이 내는 희사금이 이슬람 국가의 중요한 복지예산이 되는 현실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단식은 금전을 나누는 물질행위를 넘어 사람들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덕목을 심는 참으로 아름다운 종교적 전통이다. 자신이 번 돈은 마음대로 써도 좋은 자기 몫이 아니라 알라께서 위탁하신 재산이기 때문에 반드시 사회와 이웃에 나누어주라는 보이지 않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감동했다. 그러한 정신이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되고 있다는 데서는 더욱 큰 감명을 받았다. 이것이 21세기에도 단식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계속).

RAMADAN


이 글은 이희수 교수가 이슬람 문화 공부를 하게 된 과정을 담은 것으로 2009년 인물과사상사가 펴낸 ‘그 삶이 내게 왔다 : 나만의 길을 찾은 17인의 청춘 에세이’의 열 두 번째 장 ‘공존과 상생의 종교 이슬람과 함께’에 실린 내용입니다.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여기에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Related posts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