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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쪽 책을 통째로 외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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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과 상생의 종교 이슬람(3) – 유목문화론에 대한 아픈 추억

이웃과는 친해졌지만 학문 세계는 달랐다. 국립 이스탄불대학교 대학원에서는 아직도 성적평가를 위해 리포트 대신 반드시 시험을 친다. 나의 시험 콤플렉스가 다시 발동했다. 아무리 밤을 새워 열심히 해도 터키 학생들과 경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디서건 호흡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 동양사를 가르치는 여교수가 문제였다. 필수과목인 ‘유목문화론’ 시험에 59점을 주었다. 낙제였다. 15일 뒤의 재시험에서도 똑같이 59점을 받았다. 규정상 1년 후 재수강이 가능하고, 그때 또 낙제하면 수학능력 부적격자로 제적이었다.

다음해 이 과목을 다시 들었다.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59점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15일 이후 재시험에 실패하면 퇴학이었다. 유학의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실패한 인생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용기를 내서 그 교수 집을 찾아가서 통사정을 했다. 최선을 다했다고, 낙제만은 면하게 해달라고… 돌아온 건 차가운 한 마디.

“자네만 유학 생활한 줄 알아. 외국 학생이라고 봐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마.”

절망과 함께 알 수 없는 오기가 치밀었다. 아예 그 교수의 저서 ‘유목문화론’을 깡그리 외워버리기로 했다. 그때 나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달았다. 거의 자지 않고 5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을 수십 번이나 집중해서 정독하면서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름만에 정말 그 책이 기적처럼 외워지는 것이다.

드디어 운명의 시험 날. 그 교수가 직접 감독으로 들어왔다. 두 문제 모두 책에 나온 내용이었다. 나는 감독 교수가 지켜보는 앞에서 그 책에 있는 내용을 점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기술했다. 그리고 90도 절을 하고 교실 밖을 나왔다. 며칠 뒤 공고판에 붙은 나의 성적은 백점이었다. 문과대학이 생긴 이래 그 교수로부터 백점을 받은 학생은 내가 처음이었다.

그 덕분에 내가 이스탄불대학 교수가 된 이후 유목문화론을 강의할 수 있었지만,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은 정말 악몽과 같다. 그래서 이스탄불의 모교를 가끔씩 찾아가도 나는 일부러 그 교수의 연구실을 피해 다닌다. 그때의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İstanbul Üniversitesi

그리고 굳게 결심했다. 만약 대학교수가 되어 강단에 선다면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무모한 시험만은 결코 치르게 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나는 대학교수가 된 이후 한번도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해서 성적을 준 적이 없다. 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과제를 준다. 맡은 수업이 교양과목이라 반드시 시험을 요구한 대학도 있는데, 일관되게 이를 거부하다가 경위서를 쓴 적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

1986년, 박사과정 학습과정이 끝나고 본격적인 논문준비에 들어갔다. 이번엔 나의 아랍어 실력이 문제가 되었다. 지도교수는 자료해독 불가 판정을 내리고 1년간 아랍어 연수를 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초급아랍어를 배운 뒤라 튀니지의 부르기바 스쿨에서 6개월간 혹독한 아랍어 전문교육을 받아야 했다(계속).


이 글은 이희수 교수가 이슬람 문화 공부를 하게 된 과정을 담은 것으로 2009년 인물과사상사가 펴낸 ‘그 삶이 내게 왔다 : 나만의 길을 찾은 17인의 청춘 에세이’의 열 두 번째 장 ‘공존과 상생의 종교 이슬람과 함께’에 실린 내용입니다. 저자와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여기에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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