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의 향연, 모로코 마라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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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문명과 도시(18) – 베르베르인들의 고향

 

붉은 도시 마라케시. 중세의 성벽도, 모스크도, 집들도, 메디나도, 택시도 모두 붉은 색을 띤 매혹적인 도시다. 마라케시의 붉은 색은 석양으로 물들 때 더욱 선명한 빛을 드러낸다. 붉은 해가 야자수 너머 사막의 저편으로 기울 때, 다시 한번 붉은 색의 향연에 빠져드는 도시다.

사막의 초입에 위치해 일년 내내 무덥지만, 한여름 서너 달을 제외하곤 그래도 아틀라스 산맥에 쌓인 하얀 눈을 언제나 볼 수 있고 겨울에는 스키까지 즐길 수 있는, 계절을 초월한 곳. 최고 전성기에는 남으로 사하라 이남의 말리로부터 북으로 스페인의 안달루스 지역까지, 그리고 동으로 튀니지와 서로는 대서양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의 수도였던 곳. 베르베르인들의 고향이며 그들의 자부심이 마음껏 묻어나는 도시가 바로 마라케시다.

Marrakesh Koutoubia

미나렛(첨탑)은 예배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잔잔하게 울리는 장소다. 그래서 모스크마다 몇개의 미나렛이 있기 마련인데, 마라케시 가운데 자리한 쿠타이바 모스크에는 무려 77m짜리 미나렛이 우뚝 솟아 있다(flickr).

마라케시는 1062년 사하라의 베르베르 종족들이 뭉쳐서 세운 알무라비툰 왕조의 술탄 유수프 빈 타시핀이 건설했다. 알무라비툰 왕조는 스페인을 다스리며 얻은 많은 부를 바탕으로 스페인 예술가들까지 불러 마라케시를 넓히고 아름답게 꾸미는 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 그 결과 그때 만든 지하 농수로는 지금까지도 아틀라스의 물을 마라케시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1147년 새로운 베르베르 세력인 알무와히둔 왕조가 마라케시를 점령했고, 알무라비툰 왕조가 통치하던 지역에다 주변 지역까지 정복해 모로코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마라케시를 세계적인 이슬람 도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쿠타이바 모스크라는 걸작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페스를 기반으로 한 마린 왕조가 1269년 알무와히드 왕조를 멸망시키면서 마라케시의 영광은 사라지는 듯했다.

16세기 사아드 왕조가 발흥하면서 마라케시는 다시 제국의 수도가 됐고, 이때 유대인 집단 정착촌 ‘멜라’, 거대한 ‘모사인 모스크’, ‘알리 벤 유스프 마드라사’ 등이 건축됐다. 그러나 알라위 왕조는 제국의 수도를 메크네스로 옮겼고 그곳의 궁전 건축을 위해 마라케시의 알 바디 궁전을 가져다 건축 자재를 써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알 바디 궁전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때부터 마라케시는 제국의 중심에서 멀어졌고 쇠퇴의 시기로 접어든다. 이후 모로코가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면서 프랑스 도시건설계획에 따라 마라케시에는 신도시가 지어졌고, 구도시인 메디나도 재정비됐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으로 꼽혔던 알비히야 궁전의 전경. 그러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wikipedia).

모로코 북부에서 남부로 가는 여행은 매우 매혹적인 여정이다. 모로코의 행정수도 라바트에서 출발한 기차는 불과 4시간여 만에 드넓고 푸른 초원 지역에서 돌들만 뒤덮인 황량한 사막 지역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그 황량한 풍경 속에서 보석처럼, 오아시스처럼 나타나는 도시 마라케시를 만나는 것은 너무나 마음 설레는 일이다.

마라케시는 이제까지 본 다른 모로코 도시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페스가 이슬람의 중심도시로서의 자부심과 초연함으로 가득차 있다면 마라케시는 베르베르 도시답게 자유분방함과 따스함이 묻어났고, 라바트가 수도답게 빈틈없이 꽉 짜인 도시였다면 마라케시는 흐트러짐 속에 조화를 이루는 모로코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카사블랑카가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분주함이 가득한 도시였다면 마라케시는 훨씬 여유롭게 사막을 껴안은 아프리카적인 모습의 도시였다.

마라케시 여행은 도시 중심에 위치한 쿠타이바 모스크에서 시작된다.12세기에 건설된 이 모스크는 알무와히드인들의 영광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특히 미나렛(첨탑)이 유명한데, 황토색 흙벽돌을 6층 구조로 쌓아 올린 것으로 높이가 77m에 이른다.

알무와히드인들은 라바트와 세비야에 비슷한 모스크를 지어 그들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 라바트 모스크에는 첨탑은 남았지만 사원은 지진으로 사라져 흔적만이 남아 있고, 세비야 모스크는 첨탑이 히랄다탑으로 바뀌어 남아 있지만 모스크가 있던 자리는 대성당으로 바뀌고 말았다. 역시 역사는 승자의 것이던가. 패자는 말없이 모스크가 성당으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메디나의 고동치는 심장’,‘축제의 광장’이라 불리는 마라케시의 자마 알 프나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wikipedia).

쿠타이바 모스크 옆으로 걸음을 옮기니 자마 알프나 광장이 나온다. 이곳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밤과 낮으로 바꾸어 가며 끝없이 펼쳐진다. 낮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민속축제를 벌인다.

기획되지 않은 거리 연극, 점쟁이들의 주술과 부적, 다양한 베르베르 음악들의 향연, 우리네 시골의 약장수들이 즐겨하던 재주넘기, 온갖 종류의 약재들을 판매하는 약장수들의 외침, 코브라 춤을 보여주며 돈을 버는 뱀 부리는 사람들의 피리소리, 구구절절이 기묘한 이야기들을 목소리 높이며 들려주는 이야기꾼의 흥분된 목소리. 이렇게 쉼 없이 계속되는 삶의 향연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물을 파는 물장수들로 이 광장을 꾸몄다면 밤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너른 광장을 가득 메운 포장마차들에서 번지는 연기와 민속악단들의 공연 소리는 하늘을 뒤덮고 또 가르며 모든 세계인들이 함께하는 대화는 광장을 가득 채운다. 유네스코마저도 이 삶의 공간을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자마 알프나 광장은 우리 삶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

광장을 지나니 메디나가 있다. 메디나는 예전에는 주거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시장으로 쓰인다. 이곳 메디나도 페스처럼 거미줄 같은 미로와 그 중앙에는 모스크를 품고 있다. 모스크가 삶의 중심에 자리잡는 방식은 이슬람 도시의 전형이다.

Marrakesh Medina

Marrakesh Medina

마라케스의 메디나, 예전에는 주거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주로 시장으로 쓰인다.(Flickr)

모스크에는 꾸란 학교가 있고 모스크를 중심으로 하맘(목욕탕), 빵가게, 책방 등이 있고 연이어 시장이 있다. 사람들은 이 메디나 안에서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그들의 삶을 영위한다. 마라케시의 베르베르인들도 이 메디나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기쁨과 슬픔을 경험하고 그들의 일생을 마쳤으리라.

해 뜨는 나라에서 태어난 내가 서쪽 끝의 해지는 나라 모로코 마라케시의 메디나 골목에서 베르베르인들의 삶을 그려보면서 나의 삶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반추하다니. 너무나 뜻 깊은 일이었다. 멀리 떠난 타국에서 타자를 통해 나를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여행은 아닐까?

마라케시를 떠난 열차는 북으로 힘차게 달린다. 차창 밖으로 베르베르 전사들이 말을 타고 힘차게 북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프리카를 넘어 유럽의 스페인에 정착한 그들은 눈 덮인 아틀라스 산맥에 둘러싸인 마라케시가 너무도 그리워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설원을 배경으로 한 그라나다를 건설했고, 마치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듯 그라나다에 붉은 색의 알함브라 궁을 건설하였다.

사하라를 넘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활짝 피우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세의 베르베르인들의 모습을 그리며 석양이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 마라케시를 떠났다.


 * 이 글은 2006년 1월부터 서울신문에 ‘이슬람 문명과 도시’로 연재된 것으로 저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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