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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이슬람과 서구의 응어리는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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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이 바라본 이슬람 분쟁(1)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무슬림들의 심정은 매우 착잡했다. 미국시민들을 겨냥한 반인류적 테러행위에 한 목소리로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서구의 ‘이슬람 악마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묵시론적 분위기도 팽배했다. 보복에 나선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심지어 9.11 테러와 아무 상관없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를 침공해 무고한 이슬람 국가 시민들이 죽어나가자 무슬림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다.

탈레반이나 사담 후세인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서구의 철저한 이중잣대 때문이었다. 이웃 팔레스타인에서 가난한 생명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해 일상처럼 죽어나가고, 수십만명의 무슬림들이 서구의 침공으로 목숨을 잃었는데 3,000여명의 9.11 테러 희생자만 기억하고 또 다른 무슬림 형제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서방의 태도에 분노한 것이다.

‘생명의 무게와 가치는 누구나 동등하다’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서구에 의해 짓밟히는 현실에 대한 극단적 반응이 자살폭탄테러라는 복수심으로 나타났다. 알 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같은 일부 급진주의자들의 일탈행위라 하더라도 무슬림들이 9.11 테러나 서구 시설을 향한 자살폭탄테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세계와는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서 우리는 이슬람 세계와 서구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의 뿌리에는 쉽게 치유되기 힘든 역사적 기억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오늘날 서구와 이슬람 세계가 충돌하고 사사건건 부딪치는 배경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두 세계는 적어도 1,200년이라는 오랜 기간의 ‘지배-피지배’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일제 36년의 식민지배가 갖는 한일 양국 간의 응어리를 생각한다면, 두 세계의 불편함과 상대방에 대한 적의(敵意)의 크기가 얼마나 클지 어림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세력 1,000년간 유럽 호령

첫 승자는 무슬림이었다. 이슬람 세력은 거의 1,000년(711~1683년)동안 유럽을 지배하면서 영광과 환희, 무엇보다 자존의 시대를 만끽했다. 이슬람은 승리의 종교였으며, 야만을 깨우치는 문명이었으며, 모두가 우러르고 배우려는 선진문화였다.

아랍의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의 공식 초상화.

이슬람이 처음 유럽 땅을 차지한 것은 711년이다. 그 해 아랍 장군 타리크 이븐 지야드는 자신의 이름을 딴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침공했고 732년에는 프랑스 파리 교외 푸아티에까지 진격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유럽을 구한 것은 프랑크 군주 카를 마르텔이었다. 그는 유럽연합군을 결성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이슬람의 북상을 저지했다.

그렇지만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은 1492년 이사벨라 여왕이 이 땅을 되찾을 때까지 거의 800년간 이슬람의 영토가 됐다. 지중해에서도 이슬람의 팽창이 계속됐다.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를 포함해 지중해는 거의 200년 이상 이슬람의 바다가 됐다. 10세기에 시칠리아의 중심 도시 팔레르모에 300개 이상의 모스크가 세워지고 150개 이상의 이슬람식 정육점이 있었다고 하니 이슬람 문화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14세기 아랍 역사학자 이븐 할둔은 “지중해는 유럽인들이 배 한 척 띄울 수 없는 이슬람의 바다가 됐다”라고 호언할 정도였다. 이 시기 이슬람이 지배한 이베리아 반도는 중세 세계 최고 수준의 문명의 절정기를 누렸으며, 톨레도의 번역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과학, 예술, 문화 관련 저술들을 라틴어로 번역해 유럽에 전해 줌으로써 유럽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지식의 원동력이 됐다. 특히 10세기경 코르도바는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 제국 수도로서 인구 50만명의 대도시였는데, 모스크가 1,600개, 8만여개의 상점에서 1만 3,000명의 직공이 일하는 국제교역 중심지였다.

바그다드와 코르도바에서 동시에 꽃핀 중세 이슬람의 번성이 계속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돌연 칭기즈칸이라는 새로운 정복자가 등장해 1258년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인 바그다드가 초토화됨으로써 이슬람 세계도 끝이 나는 듯했다. 그러나 중동에서의 몽골제국은 반세기만에 사라지고, 이번에는 아랍이 아닌 투르크인들이 오스만 제국을 통해 이슬람 세계를 천하 통일했다.

북아프리카 모로코까지 장악한 오스만 제국은 파죽지세로 유럽 영토로 진격해서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고 비잔틴제국을 멸망시켰다. 이로써 발칸반도의 이슬람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1683년경에는 당시 유럽 최강국이었던 합스부르크가의 심장부인 비엔나가 세 차례나 공격을 받을 정도로 강성했다.

오스만 군대가 난공불락의 비엔나 점령에 실패함으로써 유럽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지브롤터가 이슬람 세력권에 넘어간 711년부터 비엔나가 공격 당하는 1683년까지 거의 1,000년간 유럽은 이슬람 세계를 이기지 못했다. 기독교 유럽세계가 이교도인 이슬람으로부터 1,000년간 지배당하고 위협의 공포에 떨었다는 사실은 쉽게 떨쳐버리기 힘든 앙금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그것이 오늘날 유럽이 이슬람세계에 대해 갖고 있는 이슬람 포비아(이슬람 혐오증)의 역사적 배경이다.

루이 프랑수아 르죈 남작이 1808년 그린 ‘피라미드 전투’.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공은 지중해를 둘러싼 오랜 패권 전쟁에서 유럽의 우위가 확인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비엔나 공략 실패 후 이슬람세력 내리막

이슬람세계가 유럽의 약진에 두려움을 느낀 적도 더러 있었다. 첫째는 1099년 1차 십자군 전쟁이었다. 이슬람 왕조가 지배하고 있던 예루살렘이 기독교 십자군에 점령당하면서 성 안에 있던 모든 무슬림들과 유대인들은 잔혹하게 몰살당했다. 무슬림의 입장에서는 ‘승리는 항상 이슬람의 편’이라는 절대 신념에 처음으로 금이 간 사건이었다. 이슬람 세계가 맛본 최초의 패배였던 만큼 그 충격도 컸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어진 7차례의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과는 상관없는 약탈전쟁으로 돌변했고 심지어 기독교 세계끼리의 다툼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187년 아랍 장군 살라딘이 다시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관용정책을 펼침으로써 유럽세계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확실한 우위를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함대가 유럽함대에게 침몰당하자 약간의 두려움이 확산됐고, 1683년 믿었던 비엔나 공성 전투에서 끝내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가를 꺾지 못하자 희망이 좌절로 바뀌기 시작했다. 비엔나 전투 실패는 유럽을 향한 이슬람의 팽창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로 돌아서는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그 후 100년은 힘의 균형추가 이슬람 세계에서 서구로 다시 넘어가는 조용한 냉전의 시기였다.

1798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제 이슬람 세계가 본격적으로 서구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동남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1602년부터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고, 이슬람 왕국인 인도 무굴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도 18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로써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20세기 중반까지 200여년 동안 모든 이슬람 세계가 단 한 지역의 예외도 없이 서구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000년간 가르치고 깔보았던 야만의 유럽세계로부터 도리어 지배당하는 왜곡된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무슬림들은 피식민 지배를 경험하면서 지난 1,000년간의 역사적 ‘갑질’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나마 이슬람 세계의 상징적 구심체였던 오스만 제국마저 1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에 가담해 패전국이 되면서 이슬람 세계는 산산조각이 났다.

57개 국가로 쪼개진 이슬람 세계

이슬람 세계는 이제 57개 개별국가로 독립을 쟁취했다. 하지만 최근 수백년 간 고통 당하고 모멸 당하면서 종교적·문화적 열등감에 시달려 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들은 약자의 현실을 수긍하고 서구와 협력하고 공존하는 실용주의로 돌아섰지만, 서구의 이중잣대와 이슬람 세계를 향한 불공정한 침략행위에 일부 급진주의자들은 행동으로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집트 급진 사상가 하산 반나에서 출발한 이슬람 근본주의 이념 집단들은 무슬림 형제단처럼 집권단계까지 진화한 반면, 일부는 알 카에다와 IS 같은 무장 투쟁조직으로 변신하여 글로벌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 이 글은 한국일보에 2015년 6월 8일부터 연재되는 글로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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