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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현장의 마에스트로, 카림 와스피

건물은 불이 났는지 검게 그을려 있다. 무언가를 막 치운 듯 길 복판에 쓰레기 더미가 그대로 놓여 있다. 울퉁불퉁한 도로 가운데 첼로 박스가 보이고,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첼로를 연주한다. 기괴한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선율. 이제 막 테러가 휩쓸고 지나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풍경이다. 번화한 만수르 거리에서 지난달 말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10명이 목숨을 잃었고 27명이 다쳤다. 그 곳에서 남자는 첼로를 켠다. 거리로 나온 마에스트로 카림 와스피는 43세의 첼리스트다. 이라크국립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이라크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다. 20대에 미국으로 유학해 인디애나주립대학에서 헝가리 출신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를 사사했다. 보스턴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정치학도 출신이기도 하다. 이라크국립교향악단의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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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이슬람혁명과 서방의 공세

구정은의 이란역사(5) – 호메이니와 이란이라크전쟁   아들 파흘라비(보통 ‘팔레비 국왕’으로 불리는) 즉위 뒤인 1941년 소련과 영국은 이란을 침공한다. 이란은 연합국의 병참기지가 되었고, 영국과 소련의 경제적 침탈도 심해졌다. 소련군은 2차대전 종전 후에도 가장 늦게까지 이란에 주둔했으며 이를 배경으로 이란 공산당인 투데당 Tudeh party이 세력을 불렸다. 반외세 민족주의를 내세운 모하마드 모사데그 Mohammad Mossadegh (위 그림)가 이끄는 국민전선이 약진을 보이자 1951년 국왕은 등 떼밀려 그를 총리에 임명한다. 모사데그 총리는 취임과 동시에 유전 국유화를 단행했다. 이란 유전을 꿰차고 있던 영국은 이란의 돈줄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모사데그가 투데당과 협력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까지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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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근대 이란의 서구화 정책

구정은의 이란역사(4) – 파흘라비(팔레비) 왕조의 개혁   근대 이란은 카자르 Qajars 왕조 (1795-1925) 시기부터라고 볼 수 있다. 아그하 모하마드 칸 Agha Mohammad Khan은 케르만 지방에서 잔드 Zand 왕조를 끝내고 카자르 왕조를 연 뒤 테헤란으로 천도했다. 하지만 성격이 극악무도해서 시종에게 살해되고 말았다고. 아들도 애비 못지 않았는지, 사치에 탐닉해 국고를 탕진하고 아제르바이잔을 러시아에게 빼앗기는 바보짓을 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란 문화권인데 옛 소련 시절을 거치면서 나라가 완전히 비틀어졌고, 독립한 뒤에는 아수라장 꼴이 났다. 19세기 중엽부터 러시아와 영국이 이란을 침략하기 시작. 문제의 저 아들내미는 러시아와 두 번 싸워서 지고 끝내 코카서스를 빼앗겼고, 또 그 아들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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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비 왕조 전성기를 이끈 압바스

구정은의 이란역사(3) – 압바스, 셀주크 투르크, 사파비 왕조   중세시대의 이스파한 아랍 지배 뒤에도 이란인들이 관료로 많이 등용됐고 교육, 철학, 문학, 법학, 의학 등 학문 발달에도 크게 기여했다. 아랍어가 공식언어가 됐지만 이란의 민중들은 페르샤어(파르시)를 지켰다. 특히 샤나메를 비롯한 페르샤의 서사시는 유명하다. 파르시에서 파생된 말들은 인도는 물론이고 아프간을 비롯해 ‘-스탄’으로 끝나는 대부분 나라들에서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 압바스 왕조는 9세기 무렵부터 투르크 전사들을 용병으로 불러모았다. 왕조가 쇠하자 칼리프는 상징적인 종교지도자로 전락하고, 투르크 전사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중 돋보이는 것은 셀주크 투르크(1037-1220)다. 이들은 오늘날의 아프간 지역, 즉 이란의 동쪽에서 출발해 서쪽으로 이란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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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과 이란은 뿌리도 언어도 달라

구정은의 이란역사 이야기(2) – 파르티아, 사산조, 아랍의 지배   알렉산드로스가 바빌론 땅에서 후계자 없이 사망한 뒤 광대한 영토는 휘하 장군 4명이 나눠 가졌다. 그들 중 이란을 지배했던 것은 셀레우쿠스 Seleucus 장군이었다. 셀레우쿠스와 그 후손들이 이끈 왕조를 셀레우쿠스 seleucid 왕조(B.C. 312-B.C. 247)라고 부른다. 그러나 셀레우쿠스 왕조는 지배구조를 만들기도 전에 반란에 시달렸다. 현재의 타지키스탄 지역인 Fars 지방(Farsi, 즉 페르샤어의 어원이 됐던)에서는 半유목민인 파르티아족(이란족과 스키타이족의 혼혈)이 셀레우쿠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파르티아 왕조(B.C.247-A.D. 224)를 세웠다. 반란 지도자 아르사케스 Arsaces의 이름을 따서 아르사케스 Arsacid 왕조라고도 한다. 파르티아 왕조는 미트라다테스 Mithradates 2세(B.C.123-87) 때 세력을 확장해 인도와 아르메니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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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역사(1) – 이란인 조상은 아리안

구정은의 이란 역사 이야기(1) – 아리안, 그리고 크세르크세스   이란은 열사의 사막이 아니다. 걸프의 거대한 모래국가와 달리 이란은 기본적으로 사막이 아닌 ‘고원’으로 이뤄져 있다. 북쪽의 고원지대는 상당히 추워서 1년의 절반 동안 눈에 덮여 있는 곳들도 있다고 한다. 이란의 부자들은 이 고원지대에 스키를 타러 다닌다고 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에 나오는 ‘추운 마을’들을 연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란, 아리안  이 이란고원에 인류가 둥지를 튼 것은 아주 오랜 일이다. 페르샤라는 이름을 대체 언제부터 들어왔던가. 이란인의 직접적인 조상은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인 아리안들이다. 이들이 고원에 들어온 것은 기원전 2500년 쯤으로 추정된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아리안들은 기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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